역사이야기

위기에 처한 조정을 구하다. 왕의 장인이 된 김은부, 인생은 김은부처럼

cky0214 2023. 12. 1.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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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6년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합니다. 그러나 지방 호족, 군벌들의 힘은 여전히 막강했습니다.

 

광종때부터 시작된 과거제도는 왕권강화를 위해 시행됐으나 선발 인원이 적었고, 관료사회가 자리잡지 못하여 지방 곳곳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지요.

 

특히 조정의 힘이 약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했는데요, 이를 극명히 드러난 사건이 발생합니다.

 

김은부

 

바로 고려 현종의 몽진 때였지요. 거란이 2차 침입당시 현종은 몽진을 떠나게 되는데, 이때 김은부를 제외한 모든 다른 호족은 몽진길 내내 현종에게 위협을 가하게 됩니다. 

 

이번 post에서는 김은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니다. 몽진길을 도왔던 지채문에 대한 post도 재미있게 봐주세요.

 

 

나라의 멸망을 막다, 몽진 중 현종을 끝까지 호위한 지채문

거란 성종 40만 대군의 2차 고려 침입 당시, 고려 조정은 중과부적으로 밀리게 되고 결국 개경까지 함락됩니다. 고려 현종은 어쩔 수 없이 강감찬의 강력한 권유로 항복을 하지 않고 몽진에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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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부(金殷傅)


1. 김은부의 생애

김은부(金殷傅,출생미상~1017년 6월11일 사망)의 본관은 안산 김씨이며 신라 왕실의 후손입니다.

 

신라의 왕족인 김긍필의 아들로 수주(지금의 수원) 안산현(安山縣)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근검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종 때 견관승을 지냈고, 목종 때 여러차례 전임하여 어주사가 되었으며, 현종 초에 고려 12주목중 공주목(公州牧)의 절도사가 되어 안절군( 安節軍)을 지휘하였습니다.

 

김은부

 

그의 부인은 인천 이씨의 시조 소성현 개국후(邵城縣開國侯) 이허겸의 딸이고, 이 두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모두 현종의 왕후가 되었습니다. 이후 모든 고려의 왕은 그의 후손이기도 하지요. 

 

고려 거란 2차 전생에서 거란군에 의해 불타버린 개경을 뒤로하고 남진, 몽진하는 현종을 유일하게 극진히 보필하여 훗날 고려의 중신이 되었고 출세가도를 달리게되는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2. 현종을 돕다

1010년 강조의 반란을 명분으로 거란 성종 40만 대군이 고려를 침입합니다.

 

흥화진을 비롯한 서북방면의 성은 잘 버텨내지만, 거란군은 특유의 직도 전략(수도만을 향해 직진)을 구사하며 개경을 순식간에 함락하게 됩니다.

 

강감찬의 강력한 권유로 현종은 개경을 뒤로하고 머나먼 몽진의 길을 떠나게 되지요. 

 

현종 몽진

 

강조정변이 있은지 1년, 그리고 선대왕이 죽으면서 즉위했던 현종이었기에 그에게 향하는 민심은 흉흉했습니다.

 

이는 지방 절도사와 호족들도 마찬가지여서, 현종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고 오히려 공격을 하는 지방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채문의 도움으로 겨우 목슴만 건진 현종은 김은부가 절도사로 있는 공주(公州)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때 김은부는 예를 갖추어 현종을 극진히 영접을 하였고, 현종을 위로한 뒤 의대와 토산물을 바치게 됩니다.

 

몽진길에서 가지각각의 위기와 고초를 겪은 현종은 그제서야 옷을 갈아입고 호종하는 관리들에게 받은 토산물을 나누어 줍니다.

 

김은부의 따뜻한 배려를 받은 현종은 공주를 떠나 나주까지의 길을 다시 재촉하게 됩니다.

 

현종이 파산역(巴山驛)에 도착했지만 역리들은 모두 달아났고 어주에 음식이 없자, 또다시 김은부가 음식을 올리며 아침저녁으로 정성껏 받들었습니다. 

 

현종이 나주까지 무사히 피시한 사이, 하공진이 거란과의 교섭으로 거란군은 군을 퇴각시키기 시작합니다.

 

현종이 상경길에 다시 공주에 유숙하게 되는데, 김은부는 첫째 딸을 시켜 어의(御衣)를 지어 올리게 합니다.

 

 

몽진길에 이토록 극진히 자신을 도와준 김은부에게 감사의 표시로 현종은 그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이는데 그가 바로 원성왕후입니다. 이후 맞아들인 원혜왕후, 원평왕후 또한 김은부의 딸들입니다.

 

원성왕후

 

현종의 아들 덕종(현종 다음 왕)과 문종은 김은부에게 손자이며 현종과 원성왕후 사이에서 나은 자식들입니다. 


3. 출세길이 열리다

현종을 돕고 딸들까지 왕후가 되자 김은부는 출세를 하게 됩니다. 당시 공주 절도사로 나름대로 높은 지위였지만 이 때부터 중앙 정계로 진출하게 되지요.

 

둘째, 셋째 딸을 현종의 비로 바친 이해에 김은부는 형부시랑에 임명됩니다. 이후 거란에 생신사(왕의 생일축하)가 되어 거란에 다녀오다 내원성에서 거란의 사주를 받은 여진족에게 잡힌 일도 있었으나 곧 풀려나게 되지요.

 

1015년에 지중추사, 이듬해 호부상서, 이어 중추사상호군에 임명됩니다.

 

 

1017년 사망한 후 추충수절창국공신 개부의동삼사 수사공 상주국 안산군 개국후에 추증됩니다. 또한 안평(安平)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식읍 1천호에 추증되었고, 아내는 안산군대부인으로 봉해졌으며, 부친 김긍필은 좌복야 상주국 안산현 개국후, 식읍 1500호를 하사받았습니다.

 

장인 이허겸은 좌복야, 상주국, 소성현개국후 식읍 1500호에 추증됩니다. 

 

또한 그는 고려 왕실과 이중 인척관계를 형성하는데요, 덕종,정종,문종,정간왕은 그의 외손자들이면서 동시에 덕종, 정종형제와 문종, 정간왕 형제는 이종사촌간입니다. 또한 외손자 문종(원혜왕후 소생)의 정비 인평왕후는 현종과 김은부의 딸 원성왕후의 소생으로 그의 외손녀가 됩니다.

 

문종의 제 2비인 인예왕후, 인경현비, 인절현비 이씨는 그의 처조카 이자연의 딸로 처종손뻘이 됩니다.

 

김은부 가계도

 

이처럼 김은부는 몽진중이던 현종을 잠깐 도운 것으로 명실공히 왕가의 외척으로서 성장하게 되지요. 일약 고려 최고의 문벌귀족으로 발돋음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종시대까지 4대 50년간에 왕실의 외척으로서 정권을 독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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