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스스로 포로가 되어 거란군을 물리치다. 지조있는 하공진

cky0214 2023. 11. 23.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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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거란의 제 2차 전쟁에서 고려는 현종이 나주까지 피신하고, 수도인 개경이 함락되었을 뿐만 아니라 궁궐이 불타는 크나큰 피해를 입습니다. 거란 황제 성종의 과감한 직도전략(수도 함락만을 목표로 중간 방어진은 pass)으로 큰 곤혹을 치루게 된 것이지요. 개경을 함락한 거란은 추격군을 남쪽으로 보내 현종을 잡으려 합니다.

 

하공진

 

하공진은 고려 절체절명의 이 순간에 활약을 하게 되는 장수입니다. 스스로 볼모가 되는 선택을 통해 고려를 구하게 되지요.

 

이번 post에서는 하공진 장군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거란헌터 김숙흥의 post도 재미있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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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공진(河拱振)


1. 강조와 함께하다

하공진은 진주 하씨 시랑공파(侍郞公派)의 시조입니다. 본관은 진주이며 994년(성종13년)에 압강도구당사가 되었습니다. 목종 즉위12년인 1009년 목종이 궁궐의 화재로 상심하여 병이 들자 중랑장(中郞將)으로서 같은 중랑장 유종과 탁사정과 함께 침전의 문 가까이에서 경비를 서며 숙직하였습니다. 

 

 

같은 해 서경 도순검사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군사를 이끌고 오자, 탁사정등과 함께 강조의 편에 서서 정변을 주도하였습니다. 강조가 정권을 잡은 수 상서좌사낭중이 되었지요. 

 

강조정변

 

현종의 즉위 이후 1010년(현종 1년) 5월 상서좌사낭중으로 있을 때 고려에 입조한 여진족 95명을 죽인 죄로 유배당하였습니다. 일찍이 동서계에 있을 때 임의로 군대를 동원하여 동여진의 촌락을 공격하다 크게 패한 일이 있었고 이를 매우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에 벌인 일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같은 해 거란의 2차 침입이 일어나자 복직하였고 유배지에서도 풀려났지요.


2. 거란의 포로가 되다

거란의 성종이 40만 대군을 동원하여 고려를 침략했고, 중간의 성들은 지나친 채 개경으로 직진하여 함락시킵니다. 강감찬의 권유로 현종은 호부원외랑 고영기 및 왕후와 시중들 몇을 데리고 머나먼 몽진길에 오르지요. 남쪽으로 피난 중이던 현종을 하공진이 뒤따라가게 됩니다.

 

 

하공진은 현종에게 자신이 거란 진영으로 가서 그들을 철수시키겠다 자원하게 됩니다. 이미 침략 명분으로 내세웠던 강조가 죽었으며, 거란군 역시 무리하게 개경으로 진격한 점, 흥화진, 곽주, 서경성 등이 남아있어 거란군 후방이 불안한 점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내심 거란 성종도 내심 퇴각로가 불안정하고, 이미 명분이 사라진 이상 적당한 조건으로 고려가 머리를 숙여준다면 철수할 의지가 있었지요. 

 

하공진

 

이 모든 것을 간파한 하공진은 스스로 거란 진영으로 철수 교섭을 자청하여 거란 성종을 만나게 됩니다. 국왕의 사절로 거란 성종을 만나 군대를 철수하는 대신 다음의 조건을 내걸게 되지요.

 

▶ 빠른 시일 내에 현종이 거란 황제에게 입조할 것

 

▶ 강동 6주를 반환할 것

 

하공진

 

이 때 하공진은 거란 성종에게 "이미 고려의 황제께선 수천리 남쪽으로 떠나시어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오"라고 요성종을 속이게 됩니다. 실제 이때 거란 추격군과 현종의 거리는 불과 10여리였다고 합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곧 거란에게 현종이 잡혔을 것이 분명합니다. 거란 성종은 이 말을 듣고 이미 지친 병사와 후방의 불안요소등을 고려하여 철수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공진은 고영기와 함께 포로, 즉 협상의 볼모가 되어 거란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3. 끝까지 고려 사람

볼모가 된 하공진은 거란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요 성종은 그의 강직한 성품에 반해 그를 신하로 맞이하고자 하나 하공진은 끝까지 고려에 대한 충심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번의 탈출을 꾀하다가 실패하여 연경으로 옮겨져 양가의 딸을 아내로 맞아 살면서 철저한 감시를 받게 됩니다. 평소 저자에서 준마를 많이 사 고려로 가는 길에 배치하여 두고 귀국을 하려하다 탄로가 나 성종의 모진 국문을 받게 됩니다.

 

하공진

 

성종은 온갖 고문과 회유로 거란의 신하가 될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를 완강히 거부하였고, 오히려 성종에게 심한 모욕의 말로 응대하여 성종은 이에 분노하게 됩니다. 결국 하공진은 처형되게 되고, 죽은 뒤 내장까지 꺼내져 씹히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공진

 

후에 하공진은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郎)에 추증됩니다. 그는 끝까지 고려 사람이었습니다. 

 

 

하공진 사후 하공진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1110년(예종5년)에 "하공진 놀이" 라는 이름의 잡희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라때부터 있던 가무백희(歌舞百戱)를 계승한 공연이었으며 조선 후기 "산대도감계통극"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현재 진주성 내에 있는 경절사에 배향되어 있으며, 경절사 앞에는 하공진 선생의 사적비가 서 있고, 맞은 편으로 경절사가 있습니다. 

 

경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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