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전장에 핀 꽃, 고려의 잔 다르크이자 뮬란 설죽화 설화 이야기

cky0214 2024. 1. 10.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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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거란의 3차이자 마지막 전쟁에서 젊은 여성장수의 전설같은 설화가 하나 있습니다.

 

실제 역사서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구전설화속 인물이 있는데요.

 

설죽화

 

그녀는 설죽화라고 불리우며 실제 이름은 이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요.

 

이번 post에서는 설죽화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해보고자 합니다.

 

양규장군 이야기도 같이 재미있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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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죽화


1. 설죽화(雪竹花)설화?

귀주대첩이 있었던 고려와 거란 마지막 전쟁에서 여성의 몸으로 남장을 한 후 전투에 참가, 공을 세운 인물에 대한 설화입니다.

 

정확한 이름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고 설죽화였다라고만 구전되어 내려온 인물입니다.

 

 

이 설화는 현재 북한의 평안북도 일대에서 설화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며, 고려사나 기타 역사서에서는 등장한 적이 없는 실로 구전설화속의 여성장수이지요.

 

설죽화

 

그래서 당연히 실존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 설화에 따르면 아버지가 이씨였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누구는 이설죽화라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설죽화가 이름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된 표기입니다. 


2. 설화속 설죽화의 아버지

설화속 설죽화(雪竹花,1001~1019년)는 고려군의 병사였던 이관(李寬)의 딸입니다.

 

이관은 무관 가문의 후손이었지만 몰락한 가문이었기에 당시 평민이었지요.

 

고려거란 2차 전쟁 시 이관은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 장군아래에서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양규장군

 

그러나 거란과의 전투중 전사하게 되는데 그의 품안에서 아래와 같은 시 한수가 발견됩니다.

 

"이 땅에 침략하는 무리들이 천만번 처들어와도

 

고려의 자식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네.

 

후손들도 나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리라 굳게 믿고 

 

나는 긴 칼을 치겨세운 채 이 한 몸을 바처 내달릴 뿐이로다."

 

이관의 품에서 발견된 이 시는 굴암산으로 피난을 가 있던 이관의 부인인 홍씨와 당시 10살이었던 설죽화에게 전달됩니다. 

 

 

부인 홍씨부인은 남편이 남긴 시를 보고 설죽화를 바라보며,

 

설죽화 이관

 

"네가 만일 사내아이였다면 아버지의 유언을 지킬 수 있으련만" 라고 절규합니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설죽화는 눈물을 닦으며 단호하게 말합니다.

 

"어머니, 어째서 여자는 아버지의 뒤를 이을 수 없어요? 여자는 적이 공격해와도 수건을 뒤집어쓰고 도망가기만 하잖아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의 원수를 반드시 갚을 거에요".

 

설죽화

 

홍씨부인은 딸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뭉클해졌으나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지요. 하나남은 여식을 전쟁터에 보낼 수 없는 노릇이었죠.

 

하지만 설죽화의 집녑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녀는 매일 어머니 앞에 꿇어 앉아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 수 있게 해달라고 졸랐지요.

 

이런 그녀의 간절한 바램을 홍씨부인은 꺾지 못하게되고 결국 그녀의 결심을 따라주기로 합니다. 뜻을 정한 설죽화에게 무술 및 면학에 힘쓰도록 엄하게 지도하게 됩니다. 궁술, 검술, 창술 등 모든 것을 가르치게 됩니다. 

 

 


3. 어머니의 죽음

어느날 설죽화의 할아버지가 방문하고 설죽화가 무술을 연마하는 모습을 보게되고, 크게 노하게 됩니다.

 

혼처를 정해놨으니 혼례 준비를 하라는 엄명을 내린채 돌아가 버리고, 이에 놀란 두 모녀는 고민하다 집을 나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갑니다.

 

하지만 산속에서의 생활로 인해 홍씨부인의 병환이 심해지고, 열심히 간호했지만 병세는 점점 더 심해집니다.

 

그런데 이때 1018년 12월, 거란의 3차 칩입이 벌어졌다는 소문이 전해집니다. 홍씨부인은 설죽화에게 입대하라 재촉했지만 설죽화는 노모를 버리고 갈수는 없었지요.

 

설죽화

 

어느날 설죽화가 외출하고 돌아오자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한 통의 편지가 그녀를 맞이합니다. 

 

"내 일은 걱정말고 침략자를 토벌하거라"

 

이미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설죽화는 어머니의 굳은 뜻을 깨닫고 전장으로 향합니다. 

 


4. 전장에 나가다

강감찬이 있는 귀주성 인근 고려군 본영에 도착한 설죽화는 남장을 한 후 자신이 강감찬 친척이라 속이고 강감찬 상원수를 직접 대면하게 됩니다.

 

설죽화

 

강감찬은 설죽화에게 진짜 자신의 친척이냐를 묻게 되고, 설죽화는 아래와 같이 답합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거란 침략군과 싸우고자 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으고자 합니다"

 

이에 강감찬은 설죽화가 어려보이는데다 몸도 여려보여 "너의 뜻은 장하나 나이가 차면 그 때 다시오라"라며 거절을 하게 되고 이에 설죽화는 다시 간청합니다.

 

설죽화

 

"나라를 위하는데 어찌 나이를 헤아리며 몸이 크고 작음을 가리겠나이까"라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또한 뛰어난 창검술 및 무술시범을 보이며 다시 간청하니 강감찬은 놀라며 설죽화를 소년 선봉장으로 삼고 자신이 타고 다니던 백마 1필과 창 한자루를 건네줍니다.

 

이 일화가 있던 장소는 귀주성의 군마 훈련장이었고, 실제 평안북도 구성시 양하동 마량리에 그 터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5. 대활약, 그러나...

귀주 벌판에서의 대회전, 이 때 백마를 타고 질풍처럼 뛰어들어 적군을 대혼란에 빠뜨리는 소년장수의 모습이 보입니다.

 

바로 설죽화였습니다.

 

설죽화는 뛰어난 무술실력과 무용을 자랑하며 닥치는대로 거란군을 끝없이 죽였으며, 설죽화를 따라 소년 선봉대가 돌격하여 용감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설죽화

 

고려군에 소년 장군이 이끄는 선봉대가 있다는 소문이 거란군에 퍼지게 되고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설죽화는 항상 고려군의 선봉에 서서 거란의 병사들을 물리쳤으며 이 때문에 온몸에 상처가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대회전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고려군은 거란군을 포위하고 대 섬멸전을 시작합니다.

 

이 때 적진 깊숙히 침투한 설죽화를 거란군이 집중공격하게 되고, 그만 후퇴하는 거란군이 쏜 화살이 날아와 몸을 꿰뚫습니다. 

 

몸을 뒤로 젖힌 말 위의 그녀에게 2번째, 3번째 화살이 날아오게 되고, 결국 그녀는 화살이 몸에 촘촘히 박히고 말았습니다. 

 

설죽화

 

치열한 접전끝에 고려의 승리로 끝나고 승리의 함성이 울렸지만 이내 그 함성은 슬픔으로 바뀌게 됩니다. 고려의 소년 장수 설죽화가 시신으로 누워져 있었습니다. 설죽화의 백마가 유해을 등에 태운 채 본영으로 돌아왔던 것이지요.

 

전사하고만 설죽화의 품속에서 아버지 이관의 편지와 함께, 유서가 발견되는데 이 유서에는 자신이 남장을 하고서까지 싸우고 싶었던 이유와 사실을 밝히지 못한 점을 용서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이를 본 강감찬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대는 젊디 젊은 목슴을 바쳐서 나라를 지켰다. 장하도다!. 그대는 고려의 꽃이요 고려의 진정한 딸이다."

 

이후 설죽화를 비롯하여 그녀의 아버지인 이관, 어머니 홍씨 부인에게 각각 공신과 열녀의 칭호가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설죽화가 생활하고 무예를 단련했던 화반암 들판에는 그들 일가를 기리는 사당이 세워졌으며 매년 기념제를 지내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설죽화

 

그녀가 쓰러진 곳에 눈이 내리며 대나무 꽃이 피어났기 때문에 그 후 그녀는 설죽화(雪竹花)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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