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산에서 이운룡의 스승이자 이순신함대의 노장으로 활약을 한 것으로 그려진 어영담 장군, 실제 그는 이순신이 정운과 함께 제일 아끼던 장수였습니다.
60이 넘은 나이에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이순신 함대의 방향타 역할을 했으며 지략이 뛰어나 계책을 세우는데 능력을 발휘하지요.
안타깝게 임진왜란 중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이순신이 매우 애통해 했다고 합니다.
이번 post에서는 어영담에 대해 살펴봅니다. 이운룡에 대한 post도 같이 재미있게 봐주세요.
어영담
1. 생애 및 후손
어영담(魚泳潭)의 본관음 함종(咸從)으로 호군공파(護軍公派) 16세손이며 자는 경유(景游)입니다.
1532년(임진년) 내금위 소속의 적순부위 행 충무위 부사맹 어심(魚深)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고향은 경상도 함안군으로 추정됩니다.
어영담의 출생년도에 대해서는 연구한 사람이 드물어 불분명했으나 광양문화원 사료조사위원들이 어영담의 과거 급제 문서인 "방목"을 입수하여 1532년으로 확정지었다고 합니다.
출생년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1545년생인 이순신보다 13년 연상입니다.
슬하에 장남 어응해, 차남 어응린 등 2명의 아들이 있었으나, 첫째 어응해는 슬하에 아들이 없었고 어응린은 엄종어씨세보에 자식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또한 작은아버지 어침의 2명의 아들 어영수와 어영기 또한 아들이 없었고, 위의 작은 아버지 어혼 또한 아들이 없어 오군공파는 어영담의 아들 대에서 대가 끊기게 됩니다.
2. 관직에 나서다
어영담은 무예가 뛰어나고 지략과 담력을 갖추고 있어 일찍이 여도진(고흥군 점안면 여도) 수군만호에 특채(음직)로 임명되어 근무하였습니다.
32세이던 1564년 명종 19년, 식년시 무과에 병과 3위(전체 11위)로 급제합니다.
급제 후 진해 등 여러 진관의 막료,책사로 있으면서 해로를 익히게 됩니다.
임진왜란 전 그의 부임지는,
1580년 12월~1582년 2월 : 사천현감
1584년 2월~1585년 3월 : 무장현감
1591년 3월 ~ : 광양현감, 창성부사 및 기타 여러 군직
이처럼 어영담은 남해의 여러 지역에서 군직을 거치면서 해당지역 물길에 대한 정보를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된 것이죠.
3. 임진왜란 활약상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광양현감으로서 이순신 함대 휘하에서 수로 향도(水路嚮導, 물길잡이) 역할을 하게됩니다.
또한 지략과 책략이 뛰어나 이순신과 해전에서의 함대 움직임, 전투에서의 위치선정 등에 대해 많은 의견교환을 나눈 사이였습니다.
조선 수군의 첫 승리해전인 옥포해전, 합포, 당항포 해전, 율포 해전 및 한산대첩에서 조선 수군이 승리하는데 큰 공을 세웁니다.
특히 한산대첩에서는 사도첨사 김완과 함께 견내량에 정박하고 있던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수군을 유인하는 선봉에 투입되었고, 성공적으로 적을 한산도로 유인, 적을 격파할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지요.
어영담의 전공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임진장초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광양현감으로서 이순신의 초기 전투인 옥포해전부터 1594년 초 제2차 당항포 해전까지 모두 참전하여 바닷길잡이와 전투에 참여하여 큰 역할을 합니다.
옥포, 합포, 적진포에서 총 42척의 왜선을 격파하는데 힘을 보태었고, 6월 당포와 당항포, 7월 한산도, 안골포, 9월 부산포 해전까지 크고 작은 해전을 이끈 장수였지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1594년 4월 9일 전염병에 걸려 한산도 통제영에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통제공 이순신은 어영담을 특별하게 아꼈는데 이 내용은 난중일기와 장계에 잘 나와 있습니다.
4. 이순신이 매우 아끼다
이순신이 인물을 평가함에 있어 매우 까다로웠음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통제공 이순신은 어영담을 대단히 높게 평가했다고 합니다. 난중일기 상에서 이렇게 높게 평가한 인물은 정운과 어영담 정도였다고 하니 알만 하지요.
이순신이 장계을 올릴때 어영담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평가합니다.
"경상, 전라 두 지역의 변장으로 임명되어 물길의 형세를 잘 알고 계책이 뛰어난 사람"
"호남의 한 고을이 이제까지 보전된 데는 이 사람이 한몫하였습니다"
라고 어영담의 공과 능력을 높이 칭찬하였다고 합니다.
어영담이 전염병으로 사망하는 1594년 4월 9일 난중일기에서는,
"이 애통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
라고 비통한 심정을 드러내었을 정도입니다.
정운과 함께 가장 신뢰하고 아꼈던 부관 중 한명이었으며, 물길을 잘 알았다는 점에서 이순신 함대 내에서 함대 기동과 지휘에 있어 그의 역할은 중요하였지요.
이순신의 23전 23승 신화에는 어영담의 역할이 컸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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