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헤지펀드계의 거물, 영국 파운드화 공격의 선봉장 조지 소로스

cky0214 2024. 3. 2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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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는 현대 금융사에 있어 투자 전략 수립과정에 한 획을 그은 인물입니다.

 

그의 매크로 분석은 가히 천재적이었죠. 

 

조지소로스

 

한 때 영국 파운드화를 공격하여 영란은행을 항복시킨 무서운 인물이었죠.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흉으로 추축되기도 하는 인물입니다.

 

이번 post에서는 조지 소로스에 대해 알아봅니다.

 

재테크에 대한 post도 같이 재밌게 봐주세요.

 

과연 큰 돈을 벌 수 있을까? 재테크에는 대박 신화가 없다!

오늘도 증권 HTS나 증권 유투브에서는 "사자"와 "팔자"의 매물로 빨간불, 파란불을 깜빡거리면서 대박 신화를 만들어 보라여 우리를 유혹하고 있지요. 물론 대박 신화는 좀처럼 오지는 않지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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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


1. 유년 시절

워렌버핏과 동갑인 조지 소로스는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대인 변호사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친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지만, 나치가 유럽을 장악한 후 유대인인 것을 숨기고 부역자였던 양아버지와 함께 유대인들의 재산을 몰수하러 다녔지요.

 

1947년 헝가리가 공산화되고 런던으로 이주하여 정경대(LSE)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51년 졸업, 54년에 석사학위를 땁니다.

 

소로스 젊은 시절

 

대학시절 철도역 짐꾼, 은행 수습사원, 여행 세일즈맨 등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인터뷰에서 펀드매니져계에 뛰어든 계기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힘들어서였다고 합니다. 

 

 

졸업 후 고생하다 런던에 있는 헝가리 이민자가 세운 한 투자은행에 견습으로 들어가면서 그의 금융계 인생은 시작됩니다. 

 

1956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조지 소로스는 월가에서 트레이더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됩니다. 


2. 뛰어난 안목

그는 트레이더를 시작할 무렵 뛰어난 주식 종목 선정 능력을 바탕으로 리서치 헤드로 자리를 잡습니다.

 

이후 투자은행 내에서 자기자본 계정을 운영했으나 이 것이 고객 이익과 상충되는 것이 문제가 되자 분사를 해버립니다.

 

독립한 소로스는 1969년 4백만불 규모의 헤지펀드를 만들어 운용하면서 본격적인 펀드메니저로서 활약을 하게 되지요.

 

다양한 롱/숏 전략을 사용하며 조지 소로스는 탁월한 투자감각과 재귀성 이론을 바탕으로 엄청난 성과를 내기 시작합니다.

 

1970년대 초반 부동산 투자 신탁(REIT)투자를 통해 버블 붕괴를 정확히 예측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리지요.

 

ERIT

 

1973년 짐 로저스와 함께 그의 역사적인 헤지펀드인 퀀텀펀드(Quantum Fund)를 설립하면서 그야말로 월가의 괴물로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처음에 그의 퀀텀펀드는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 주식시장이 폭락했었던 1974년 수익률 부진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으나 이를 불사조처럼 극복했다고 합니다.

 

 

이후 퀀텀 펀드는 승승장구하여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그의 펀드는 4200%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거둡니다.

 

이 사이 S&P지수는 47% 상승에 그쳤지요.

 

레버리지를 동반한 니프티-피프티로 불렸던 종목들의 공매도, 위에서 언급한 부동산 REIT, 방위산업주 투자등으로 큰 수익을 거둡니다.


3. 영란은행 공격의 시작

그의 업적(?) 중에 제일 유명한 것이라고 하면 바로 영란은행 파운드화 공매도 사건이라 할 수 있지요.

 

1990년 영국은 유럽 내 단일통화권(유로화) 구축을 위해 만들어진 과도기적인 체제 ERM(환율조정메커니즘)에 가입합니다.

 

이에 따라 파운드화는 독일 마르크화 대비 상하 6%의 밴드 내에서만 움직이도록 고정되었습니다. 

 

영란은행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의 2.5%에 비해 큰 것이었죠.

 

이에 따라 밴드에서 벗어날 정도의 변동성이 발생할 경우 영란은행은 즉각 개입하여 파운드화를 안정시켜야 했습니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독일이 동독 발전을 위해 천문학적인 투자를 시작하게 되고 화폐가 풀리면서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지게 됩니다.

 

이때 독일 연방은행인 분데스방크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2년동안 10차례나 금리를 인상해야 했지요.

 

 

이에 따라 마르크화는 강세를 띄게 되고 파운드화의 가치를 밴드 내로 유지하기 위해 영란은행 역시 금리를 인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독일만큼 경제가 튼튼하지 못했던 영국은 경제가 꼬꾸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영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해가 지지 않는다며 자존심이 쎈 나라지요.

 

영란은행은 파운드화를 위해 ERM 탈퇴대신 파운드화를 계속 매수하며 파운드화의 하락을 방어합니다.


4. 영란은행의 항복(검은 수요일)

계속 파운드화를 매수하는 영란은행에 대해서 조지 소로스, 스탠리 드러켄밀러를 비롯한 똑똑한 헤지펀드들은 가능한 모든 자금을 동원하여 영란은행을 공격합니다.

 

바로 파운드화를 공매도해버리는 것이지요. 

 

너무나도 공격적인 조지 소로스의 공매도 공격에 전 세계 헤지펀드들이 동참하게 되고, 이번에도 자존심 강한 영국은 단기금리를 10%로 인상하는 초강수로 맞대응 합니다.

 

파운드화 공매도

 

이런 파운드화 방어책은 집중적인 공격에 결국 백기를 들고 맙니다.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운 레버리지 공매도에 버티지 못한 것이지요. 결국 더 버티지 못한 영란은행은 1992년 9월 16일 ERM을 나가게 됩니다.

 

안그래도 공격에 파운드화가 떨어졌는데, ERM 탈퇴로 인해 파운드화는 수직으로 급락했고 소로스를 비롯한 헤지펀드들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립니다. 

 

 

이 사건으로 영국은 향후 탄생할 EU의 유로 전환을 포기하고 맙니다. 

 

이 공격은 조지소로스의 정보력 덕분이었는데, 영국의 경제 상황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고 재정상황을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작전에 실제적으로 기획을 한 사람은 드러켄밀러였고, 이를 검토하고 허가를 내준 것이 소로스였다고 합니다. 

 

당시 과정을 설명한 슈카님의 동영상도 공유해 봅니다.

 

조지소로스 영란은행

 

 

그러나 영란은행을 통해 엄청난 수익률을 올렸지만, 이후의 투자들에서는 변변치 못하였습니다.

 

1998년 롱텀캐피탈 파산 사태(15억불손해), 2000년 닷컴 버블에서(70억불손해) 엄청난 손해를 냈고, 앞서 영란은행 공격의 선봉장 드러켄밀러의 공격적인 투자전략을 위험하게 보았던 소로스는 그를 쫓아냅니다.


5. 소로스의 입김

월가에서 그의 투자는 항상 이슈가 되어왔습니다.

 

1993년 금광 개발회사에 주식을 매수한다는 소문에 타 펀드 매니저들이 앞다투어 주식을 매수, 그 해 금값은 폭등하고 맙니다.

 

1996년 1월 도쿄의 세미나장에서 일본 주식이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말 한마디에 닛케이 주가는 폐장하기 10분동안 270포인트 상승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그러나 2000년 4월 닷컵버블로 50억달러의 손실을 보자 헤지펀드의 시대는 갔다고 선언을 해버리지요.

 

 

이후 그는 안전한 투자로 방향을 돌려, 파생상품이나 통화 선물 투자는 하지 않고 주식이나 채권에 주로 투자했습니다.

 

2010년 퀀텀 펀드를 해체하고 개인 재산만을 운용하였으며, 중국 증시를 중시하여 투자를 했지만 2015년 폭락으로 손실을 보았고 2016년 포브스 발표에서 갑부순위 10위 밖으로 밀려나기도 했습니다. 

 

소로스에 대한 평가가 과대평가였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조지소로스

 

그가 영란은행을 단독으로 공격하고, 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를 몰아넣은 것처럼 전해지기도 하는데 이는 명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 내부의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헤지펀드들의 공격을 막아낼 만큼의 역량이 없었다고 봐야 합니다.

 

홍콩은 헤지펀드 공격에 잘 버텨냈었지요.

 

또한 당시 소로스는 롱텀캐피털 투자 실패로 한국에 거의 투자를 못했다고 하지요. 


6. 검소한 사생활

그의 화려한 성과 뒤에는 그의 검소한 사생활이 있었습니다. 

 

또한 기부활동도 꾸준히 진행했었지요.

 

1993년 민주주의 인원운동을 목표로 하는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을 설립하고 매년 수억 달러를 기부하였고,2002년 비즈니스위크 발표에 따르면 5억 3600만 달러를 기부금으로 내놓아 6위에 선정되었습니다.

 

조지소로스

 

2017년 무려 180억달러(약 23조원)를 한꺼번에 기부합니다. 자신 재산의 70%를 한큐에 기부한 것이죠.

 

이때까지 그의 기부금은 무려 320(43조원)억 달러에 이릅니다.

 

그의 취미는 테니스이며 오랜기간 동안 맨해튼의 조그만 원룸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최규선씨의 주선으로 김대중 전대통령과 자주 마남을 가졌으며 사우디 왕자 알 왈리드, 마이클 잭슨과 친했으며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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