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폭락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언론에서 언급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블랙먼데이(또는 블랙"요일") 라는 단어이지요.
이 단어의 기원은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에 있었던 다우존스 대 폭락 사건에서 출발합니다.
이 폭락사태 이후 주가를 회복하는데 2년이란 시간이 걸렸지요.
서킷브레이커, 사이드카제도는 이 사건 이후 만들어졌는데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봅니다.
주문실수로 파산하게 된 한맥증권 이야기도 재미있게 봐주세요.
블랙먼데이 사건
1. 블랙먼데이란?
검은월요일(Black Monday) 사건은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하루에 뉴욕시장에서 일어난 주가 대폭락 사태입니다.
이 엄청난 폭락 사태는 홍콩에서 시작했었고 유럽을 거쳐 다른 시장이 폭락한 영향이 미국에도 영향을 끼친 사건이지요.
이 무서운날 다우존스 지수는 하루에 무려 22.61%인 508포인트가 하락한 1738.74 포인트로 장을 마쳤습니다.
역사상 하루 폭락치로 이 기록은 께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날의 폭락은 1929년 대공황당시 월스트리트 대폭락(10월24일), 10월28~29일의 검은 목요일의 수치를 훨씬 뛰어넘는 폭락이었지요.
1980년대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의 레이거노믹스 밑에서 호황을 누렸지만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 금융시장은 과열의 양상으로 치닫습니다.
이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반영된 것이 검은 월요일이지요. 이때 이미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매매가 성행했었는데, 이 때문에 하락이 가속화되었지요.
이 사건 이후 연준 앨런 그린스펀이 금리를 낮추어 통화량을 공급하여 일단 급한 불은 껐습니다.
2. 사건의 발단과 원인
1985년 말부터 1986년 초까지 미국 경제는 1980년대 초반 경기하락 국면에서 벗어나 급격하게 회복중이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말로 가면서 성장속도가 둔화되고 인플레이션도 잦아드는 등 연착륙이 진행되고 있었지요.
그러나 증권시장은 광기에 사로잡힌 채 1987년 8월 다우지수가 전년도 말 1895포인트에서 44% 오른 2722포인트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가하며 1986년 초 OPEC이 내부 분열을 겪으며 원유는 50%하락합니다.
미래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감이 원유에서부터 있었습니다. 증시만 광풍이 불어 하락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지요.
1987년 잘 나가던 10월 14일 다우존스가 -3.8%를 기록하며 2412를 기록합니다. 다음날인 15일 -2.4%, 58포인트 급락하여 이날 이미 8월25일 최고가 대비 12% 하락한 상태였습니다.
목요일인 10월 15일에는 이란이 쿠웨이트 알아마디주 석유항에 정박해 있던 미국 회사 고유의 유조선 수가리(sungari)를 실크웜 미사일로 공격합니다.
10월 16일 금요일, 이란은 또다시 미국 선적 MV 시 아일시티 유조선을 미사일로 공격합니다.
이 공격으로 이날 런던의 모든 시장이 1987년 대폭풍으로 급하게 폐장하자 다우지수는 이날 -4.6%, 108.35 포인트 하락한 2246.74로 마감합니다.
대폭락은 동아시아 주식시장이 개장한 10월 19일 아침부터 시작합니다.
금요일 대폭풍으로 급하게 폐장했던 런던시장이 개장하자 폭락세가 더 가속되었습니다. 런던시간 기준 오전 9시 30분엔 런던 FTSE100지수가 136포인트 넘게 하락하고 맙니다.
또 같은날 아침 미군이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 해상 원유정을 폭격하면서 지정학적 불안감에 더더욱 불이 붙지요.
여기에 도입된지 오래되지 않은 프로그램 매매가 대폭락을 더욱 가속시킵니다.
포트폴리오 보험 헷지의 대규모 프로그램화된 매도세로 인해 사태가 더욱더 심화된 것으로 판단되고 있지요.
폭락 후에는 시장가가 떨어지며 일정 범위를 넘어서는 폭락이 일어나자 컴퓨터가 맹목적으로 주식을 팔아버리는 사태를 일으킨 것이지요.
어찌보면 지정학적 이유로 발생한 폭락이 불완전한 프로그램 매매에 의해 중폭된 사건이 바로 블랙먼데이 사건입니다.
3. 전세계 동반 폭락이후
검은 월요일 사태 이후 10월말까지 전세계 각국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펼쳐집니다.
홍콩 -45.5%, 호주 -41.8%, 스페인 -31%, 영국 -26.45%, 미국 -22.68%, 캐나다 -22.5% 하락폭을 기록합니다.
뉴질랜드의 경우 10월 한달에만 -60%를 기록하며 이를 회복할 때까지 수년이 걸립니다.
뉴질랜드는 중앙은행의 미숙한 정책 실패로 오래 걸렸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 유동성을 팽창시키며 오히려 이 때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검은 월요일 대폭락은 역사상 제일 큰 규모의 폭락이며 아직까지도 하루 기준 최고 기록의 폭락이었습니다.
이 사태 이후 대부분의 각국 주식시장에서는 증시 폭락이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킷브레이커, 사이드카 등의 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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