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보면 상대세력을 약하게 하기 위해 또 다른 적을 끌어들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이제이(오랑캐로 오랑캐를 잡는다)와도 일맥상통하는 계책이지요.
그리고 조직 안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가 있습니다.
한편 별거 아닌 사소한 일을 가리키는 단어도 존재하는데요.
이번 post에서는 위 3가지 상황을 나타내는 사자성어(고사성어) 구호탄랑, 군계일학, 구우일모에 대해 알아봅니다.
구호탄랑 군계일학 구우일모
1. 구호탄랑
구호탄랑의 한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驅 | 虎 | 呑 | 狼 |
몰 구 | 범 호 | 삼킬 탄 | 이리 랑 |
구호탄랑을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면 호랑이를 몰아 이리, 늑대를 잡는다는 뜻입니다. 나에게 위협이 되는 적을 내 손을 빌리지 않고 다른 세력을 이용하여 친다는 것이지요.
중국 역대 왕조가 외부세력, 이민족과 같은 오랑캐를 관리할때도 사용하는 계책인데요(이이제이). 자신의 세력의 힘을 소모하지 않고 근처 세력들의 힘을 빼는 전략이지요.
1.1 유래 일화
이 사자성어는 삼국지연의 일화에서 유래한 유명한 계책입니다. 결론부터 예기하면 조조가 유비와 여포를 싸우게 만드는 계책이었지요.
조조는 유비를 서주태수로 임명하여 유비와 여포를 서로 싸우게 만들려고 하지만 1차적으로 실패합니다. 이에 모사 순욱이 다음 계략을 제시하는데요.
유비에게 황제의 명으로 남양에서 황제를 자칭한 원술을 토벌하라는 명을 내리고, 원술에게는 이 정보를 흘립니다. 유비와 원술이 서로 싸우고 있을 때 소패에 있던 여포가 서주를 차지하게 만드려는 속셈이었지요.
원술을 토벌하기 위해 출발한 유비는 서주가 비는 것을 염려하여 아우인 장비를 서주에 남겨두지만, 술을 좋아하는 장비가 걱정되어 3가지 금령을 내린 후 출발합니다. 하지만 걱정대로 술에 의해 떡이 된 장비는 결국 여포에게 서주를 빼앗기게 됩니다.
실제 정사에서는 이것이 순욱의 계략이라는 것은 적혀있지는 않습니다.
이 일화에서 유래한 것이 구호탄랑입니다.
2. 군계일학
군계일학의 한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群 | 鷄 | 一 | 鶴 |
무리 군 | 닭 계 | 한 일 | 두루미 학 |
군계일학의 한자 뜻은 "닭 무리 속에 섞여 있는 두루미 한마리"라는 의미입니다. 주위 환경이나 사람들이 좋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홀로 뛰어난 능력과 성격을 가지고 있을 때 사용하는 성어입니다.
그저 그런 보통의 평범한 것들 가운데 눈에 띄게 매우 뛰어날 때 사용하지요. 계군일학이라고도 하는데요, 비슷한 성어로 백조조봉(온갖 새들이 봉황을 배알하다)를 쓰기도 합니다.
이 성어는 서진시절(사마염)의 인물인 혜강의 아들 혜소를 가리키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혜소가 처음 벼슬에 나서 입궐하게 됩니다. 혜소는 능력이 뛰어나서 금방 눈에 띄게 되는데요, 이를 본 어떤 사람이 그를 보고 "혜소는 닭의 무리 속에 우뚝 서 있는 두루미와 같다"라고 왕융에게 말하지요.
왕융은 그 소리를 듣고 "자네는 혜소의 아버지인 혜강을 못 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네"라고 답합니다.
여기서 유래한 사자성어가 바로 군계일학입니다.
3. 구우일모
구우일모의 한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九 | 牛 | 一 | 毛 |
아홉 구 | 소 우 | 하나 일 | 털 모 |
구우일모 한자 그대로 뜻 풀이 하면 "아홉마리 소 가운데 털 하나" 라는 뜻입니다. 소 한마리에 털이 겁나 많을 터인데 그런 소가 아홉마리이고, 그 중에 털 하나라는 이야기지요.
즉 엄청난 숫자의 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라는 뜻으로, 매우 하찮고 사소한 일, 사소한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비슷한 말로 창해일속, 조족지혈이 있지요.
이 사자성어의 유래는 유명한 역사서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의 비극적인 일화에서 유래합니다.
한무제는 흉노를 치기 위해 이릉을 북방으로 보내지만 전황이 불리해진 이릉은 흉노에 항복해버리고 후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이런 이릉을 보고 분노한 한무제는 이릉의 일가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사마천이 유일하게 이릉을 옹호하고 나서지요. 사마천은 더 나아가 군대 지휘관인 이광리까지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이광리는 한무제가 아끼는 부인 이씨부인의 오빠, 즉 처남이었지요. 한무제는 사마천의 말을 못마땅하게 여겨 결국 사마천에게 사형을 명합니다. 당시에 사형을 면하려면 50만전을 내거나 궁형(내시로 만듬)을 받는 방법이 있었는데, 하급관리 사마천이 돈이 있을리 없었지요. 결국 사마천은 남자로서의 능력을 잃고 궁형으로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제일 수치스러운 궁형을 당하게 되자 사마천 주위의 사람들은 절개를 위해 자결하라 권하게 되지만 사마천은 이에 대해, "내가 법에 따라 사형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한낱 아홉마리의 소 중에서 털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을 뿐이니 나와 같은 존재는 개미같은 미물과 뭐가 다른가?"라고 답합니다.
또한, "내가 여기서 스스로 죽는다 하여도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큰 죄를 지어서 어리석게 죽음을 선택했다고 여길 것이네"라고 말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마천이 이 치욕을 견디며 살아가고자 의욕을 불태운것은 그의 인생의 역작 "사기"의 완성을 위해서였죠.
이 일화에서 유래한 것이 구우일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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