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상천 선수, 그는 한국 당구계에 있어 최고의 선수로 기억되는 분입니다.
3쿠션 당구계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일찍이 세계대회를 휩쓸면서 세계를 평정했던 그였지만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우리를 떠났습니다.
그를 추억하며 이 post를 작성합니다.
한국당구의 미래 김행직선수에 대한 post도 재미있게 봐주세요.
이상천
1. 프로필
이상천은 1954년 1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던 수재였습니다.
서울대학교 응용수학과 재학 중 당구 매력에 빠져 중퇴를 하고 본격적인 선수의 길로 들어서지요.
177cm의 키에 75kg의 건장한 체구를 지녔었고 33살이던 1987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여 당구 세계에 발을 넓힙니다.
딸은 올리비아 리(1992년4월생, 이혜진) 씨로 뉴욕에 거주중 낳은 외동딸로 현지에서 약학을 전공했습니다.
딸 역시 당구의 매력에 빠져 남편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만 30세인 2022년 LPBA에 데뷔하여 선수생활을 하고 있지요.
아버지 이상천 선수와 다르게 오른손 큐를 쓴다고 합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차지했으며, 2004년 5월 대한 당구연맹 4대회장으로 추대되어 한국 당구계의 프로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하던 중, 뒤늦게 발견된 위암으로 2004년 10월 19일 만 50세의 나이로 타계합니다.
이상천이 죽은 뒤 매년 그를 추모하는 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세계 정상급의 3쿠션 당구선수들이 참가하는 상리 인터내셔널 오픈이 그것이며, 이상천이 죽기 전까지 공동 소유자로 있던 뉴욕 퀸즈의 캐롬 카페의 주최로 열리고 있습니다.
2. 경력 및 수상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전국당구 대회를 7번 우승하는 등 이미 한국 3쿠션계를 평정한 인물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당구를 하기 위해 뉴욕으로 이주한 이상천은 1990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내셔널 챔피언쉽에서 12회 연속 우승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그의 무패행진은 2002년 결승에서 미국의 페드로에게 패배하면서 끝났었지요. 페드로의 당구 스승이 이상천이었다고 합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3쿠션 종목에 출전하여 결승까지 진출하지만 한국 황득희 선수에게 패하여 은메달을 차지합니다.
세계대회는 1993년 벨기에 겐트에서 열린 대회에서 세계 챔피언이 되었으며, 1999년 대회에서도 결승에 올랐지만 딕 야스퍼스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무릅니다.
그의 사망 후 2007년 5월 15일, 미국 당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됩니다.
그의 어릴 적 시절을 예기해 보자면 당구 4구 기준 300을 아마추어 단계에서 3개월 만에 달성했다고 합니다.
보통 2~3년 걸리는, 아니 5년 이상을 노력해야 얻을까 말까한 수치를 불과 3달만에 달성한 것이지요.
글을 쓰고있는 저도 200에서 멈춘지 20년이 다되가네요.
서울대학교 중퇴 후 도장깨기와 비슷하게 전국 각지의 실력자들을 찾아다니면서 꺾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의 수상기록은 국내를 포함하여 아래와 같습니다.
3. 플레이 스타일 및 하이라이트
현재 4대천왕이라 불리는 브롬달, 쿠드롱, 야스퍼스, 산체스 이 4명의 선수를 논하기 전, 한국의 이상천만한 인물이 없었습니다.
이상천의 감각은 천부적이었지요.
현재의 4대천왕도 그의 감각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난구를 풀어내는 구사 능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이는 세계 탑 랭커들이 모두 인정하고 있으며, 매년 추모대회를 열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3쿠션의 경우 이상천의 등장을 계기로 과거당구에서 현대당구로 변모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의 등장 이전에는 기본적인 공들인 앞돌리기, 뒤돌리기, 옆돌리기, 대회전 등 정상적인 방식의 샷이 많았습니다.
그의 등장이후 당구는 조금 더 자유롭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난구를 풀어내려는 방향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이런 스타일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 바로 이상천 선수입니다.
그가 샷을 구사하는 모습을 보면 현대 당구에서 볼 수 있는 정석적인 자세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자세에 있어서도 반쯤 서서 샷을 구사하며 손목의 스냅도 자주 이용했지요. 어디서 배운 것이 아닌 독학으로 몸에 익히면서 자연스러운 자세를 익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그는 몰아치기의 달인이라서 "칙칙폭폭"이란 별명도 있을 정도로 난구풀이에 있어서도 천재적인 감각을 뽐냈습니다.
스트로크의 완급조절도 뛰어나 항상 수구가 2적구의 한뼘 내지 2뼘 내의거리에 위치하도록 하는 포지셔닝 플레이도 압권이었습니다.
적절한 스트로크, 그립법, 세기, 두께 조절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한국 당구계에서 다시 그와 같은 인물이 나오기는 쉽지 않아보입니다.
이상천 선수의 선수시절 하이라이트 영상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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